백자진사국화문호조선시대 18세기/ 고22.5/ 구경13.3/ 복경20/ 저경10.6 백자나 청화백자에 비하여 그 수가 적은 진사백자는 조선 후기부터 조금씩 유행하였는대 주로 분원기에 만들어졌다. 민요(민간요)에서도 같은 시기인 18~19세기에 어느 한 지방 가마에서만 번조되었으리라 본다. 이항아리의 경우처럼 활달하고 대담한 피리로 진사로만 그린 것은 주로 민요산(민간가마터에서 생산된)으로 보여지며, 일부 진사채와 청화 및 철화가 혼용된 것은 관요산이라 추정된다. 종속문이 없이 주문양인 국화문을 동체중앙의 전후 양면에 커다랗게 그려 넣었는데, 서예의 필체와 같은 활달한 필치와 대담한 생략이 회화적인운치를 느끼게 해준다.